낙산사에서 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 카페 바로 앞에는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숲이 있고, 소나무숲 너머로는 낙산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그래서 테라스에서 보는 풍경이 시원시원하다. 날씨가 적당한 날에는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내부는 크게 넓지 않지만 테라스 덕분에 탁 트인 느낌이고, 전반적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쓴 모습이다. 테이블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튼튼한 편이지만, 의자가 그리 편안한 타입은 아니다. 대부분의 내부 좌석은 다소 딱딱한 느낌의 의자고, 오히려 바깥쪽 테라스 자리가 편안하다.

의외로 콘센트가 있는 자리도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다. 그리고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독특한 커피 관련 도구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위 사진의 에스프레소잔은 장식용이 아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실제로 저 잔들 중 하나에 담아서 서빙해 준다.

자동 핸드드립 머신을 사용하는 집이다. 사장님 말로는 평소 손으로 내리는 것과 동일한 세팅을 해 두어서 드립방식이 균일한 건 좋은데, 원두의 상태나 날씨에 따라 맞춰야 하는 부분까지 반영하기가 어려워 고민이라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커피는 반드시 직접 커핑을 하고 내보낸다고.

사실 이런 부분이 핸드드립 커피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한다. 맛의 고점이 높은 대신에 균일한 맛을 내기가 너무 어렵고, 저점은 지하실 아래 땅굴을 파고드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균일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본인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온갖 외부 요인까지 다 통제해야만 한다. 언제 가도 균일한 핸드드립 맛을 내 주는 카페를 존경하는 것도 이런 이유고, 내가 핸드드립을 하다가 생두를 직접 구입해서 로스팅에까지 손을 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문 기록

261017

첫 방문. 아내와 함께 낙산사에 갔다가 들르게 되었다.

가을 날씨가 좋아서인지 테라스에서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부보다 외부 자리가 확실히 인기였는데, 의자 때문인지 단순히 바깥 풍경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옆 테이블 손님이 장식장의 에스프레소잔으로 서빙을 받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냥 전시해 둔 잔인 줄 알았는데. 다음에 오면 에스프레소를 꼭 주문해 볼 생각이다. 핸드드립 머신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걸어 주시기도 했다.

콜롬비아 시드라 내추럴 와인과 다크체리의 깊은 향. 반드시 따뜻할 때 마셔 보라고 권하고 싶을 만큼 향이 좋다. 한 모금 머금으면 산뜻한 첫인상 뒤로 쌉싸름하고 살짝 떫은 맛이 따라오는데, 레드와인의 탄닌처럼 맛에 골격을 잡아 주는 기분 좋은 떫음이다. 그 뒤로는 잡미가 전혀 없다. 목으로 넘기는 순간 혀에 남던 감각이 깔끔하게 끊기고, 처음 느꼈던 와인과 다크체리의 향만 입 안에 은은하게 남는다.

지금까지 마셔 본 커피 중 손에 꼽을 만한 퀄리티다. 가스가 덜 빠진 원두 특유의 날카로운 신맛이나 잡미가 조금도 없으면서, 깊고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식을수록 산미가 올라오는데, 턱뿌리를 찌릿하게 하는 날 선 산미가 아니라 목 뒤를 간지럽히는 상큼한 산미다.

콜롬비아 페냐스 블랑카스 버번 아히 – 아이스 콜드브루 입에 머금으면 라즈베리 향이 먼저 스치고, 그 뒤로 와인처럼 무르익은 향과 경쾌한 산미가 이어진다. 아이스인데도 잔을 들기만 해도 향이 올라올 만큼 향이 꽉 차 있는 콜드브루다.

함께 나오는 구형 얼음 위에 콜드브루를 직접 부어 마시는 방식이 독특하다. 다만 큰 얼음이 천천히 녹다 보니 처음엔 꽤 진하게 시작하고, 희석 정도를 원하는 대로 맞추기가 쉽지 않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같이 나오는 레몬초코는 꽤 시큼하면서도 달콤하다. 이걸 입에 문 채로 콜드브루를 마시면 입 안에서 향미가 폭발한다. 레몬의 시큼함이 콜드브루의 라즈베리 향과 산미를 한층 더 밀어 올리고, 초콜릿의 단맛이 진한 커피의 무게를 받쳐 준다. 이 디저트와 이 커피의 궁합이 말도 안 되게 좋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 콜드브루는 2주 가까이 숙성했을 때 풋내가 빠지고 숙성 향이 올라와서 가장 맛있다고 느낀다. 이 커피는 그보다 짧게, 대략 1주 정도 숙성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 와인 같은 뉘앙스가 숙성에서 온 건지 원두의 가공 방식에서 온 건지는 확실히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도 숙성이 길어질수록 커피 본연의 향은 줄고 숙성 향이 늘어나니, 이 원두에는 이 정도가 딱 맞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더 오래 숙성했다면 내 평소 취향에는 더 가까웠을지 몰라도, 디저트와의 궁합은 오히려 어긋났을 것 같다.

소량씩 만들다 보니 숙성 시점을 매번 맞추기 어렵다는 건 안다. 내가 운이 좋았던 건지, 바리스타의 고집이 남다른 건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사장님이 털어놓은 그 고민이 무색할 만큼 잘 맞아떨어진 하루였고, 정말 즐거운 커피 타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