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분위기, 조망의 측면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다녔던 모든 카페들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곳. 분위기를 설계한 사람의 의도가 느껴지는 면모가 다양한 디테일에서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예쁜 인테리어가 아니라, 관리가 아주 잘 된 내부와 외부의 면모가 인상적이다.

시험 삼아 흔들어본 모든 테이블이 꿈쩍도 않을 정도로 튼튼하게 바닥과 밀착되어 있었고, 멋진 통창뷰에는 거슬리는 얼룩이 하나도 없다. 모던하면서도 인간미 느껴지는 내부의 모습은 균형 잡힌 모더니즘 카페 인테리어의 교보재라 해도 될 만큼 훌륭하다.

카페의 대외적 이름은 아이소지만, 풀네임은 “아이소 사운드”일 만큼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도 상당히 퀄리티가 높다. 그런데 그 스피커를 음질 과시용으로 쓰는 게 아니라, 정말 카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BGM의 역할을 철저히 하도록 튜닝을 잘 해뒀다. 고음을 뭉툭하게 깎아서 귀를 쏘지 않게 하고 저음이 너무 울리지 않도록 억제하면서도 음질이 떨어져 보이지는 않도록 중역을 선명히 처리한 것으로 들린다. 볼륨 처리도 절묘하다.

시선에 보이는 대부분의 구석구석에서 카페 운영의 철학이 느껴진다. 곳곳에 있는 와이파이 안내문, 1인 좌석으로 쓸만한 좌석 곳곳에 배치된 콘센트, 결제 장소 바로 옆에 오픈된 핸드드립 테이블, 그 옆에 있는 자체 상품 진열대, 허리는 안 아프도록 잘 받쳐주는데 엉덩이만 딱딱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의자(…) 등등. 의도 없는 내부 기믹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먹거리는 다소 미묘하다. 일단 베이커리의 비주얼은 정말 많이 훌륭하다. 다만 맛의 경우에는 외견만큼 인상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평범한 빵집보다는 퀄리티가 높다고 할 수 있겠다.

커피는 아직 하나밖에 먹어보질 않아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방문 시점에 이곳에서 판매하는 가장 비싼 핸드드립 커피였던 과테말라 엘 소코로 마라카투라 워시드는 맛이 다소 아쉬웠다.

원래 핸드드립이 맛의 편차가 심할 수밖에 없고, 특히 라이트 로스팅은 워낙 섬세한 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문제에 취약하지만 솔직히 그래서 비싼 것이고 비싸기 때문에 퀄리티 유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워낙에 카페 곳곳에 운영 철학이 돋보이는 데다 수도권에서 찾아오기 쉽도록 고속도로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점, 여러 명이 활용하기 좋은 신뢰할 만큼 크고 튼튼한 테이블이 있는 점 등 장점이 다양하게 많아서 앞으로도 종종 찾아올 카페로 생각하고 있다.

방문 기록

261011

첫 방문.

과테말라 엘 소코로 마라카투라 워시드 핸드드립을 따뜻하게 주문해서 마심. 로스팅 포인트가 라이트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로스팅이 덜 된 상태로 느껴지고 숙성이 덜 된 원두에 물을 너무 많이 섞은 느낌의 맛이 났다. 시작은 밍밍한 물맛, 다음은 이산화탄소의 불쾌한 신맛, 테일에서만 흔적이 느껴지는 고급 원두의 상큼한 끝맛이 입 안에서 감돌지 못하고 살짝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 원래 있었을 너티한 마일드함은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추억의 맛이기도 하다. 혼자 집에서 로스팅을 하던 시절에 기껏 어렵게 구한 좋은 원두를 볶아놓은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나면 어떻게든 살리려고 좀 더 볶다가 포인트 놓쳐서 태워먹고, 다음번에 또 실패했을 때엔 더 볶는 게 위험하다 생각해서 드립으로 살려보려 했지만 밍밍해지기만 하더라. 이렇게 깔끔한 카페에서 멋진 창밖 풍경을 보는 와중에 1.5룸 자취방 가스레인지에서 꼬릿한 로스팅 냄새와 채프가루 뒤집어쓰며 로스팅하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뭔가 새롭다.

같이 주문한 디저트는 티라미수다. 부드러운 크림의 맛과 묵직한 유지방은 좋은데 어째서 에스프레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맛이 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커피가 없으면 티라미수가 너무 느끼하다. 아무래도 카페 전체 분위기의 너무나도 높은 퀄리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맛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렇지만 품격 있는 공간에는 아무래도 품격 있는 경험이 따라와주길 기대하는 게 사람의 기본적인 기대심리 아닌가? 게다가 단 한 번의 방문으로 카페의 모든 면을 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음에 찾아오면 또 다른 메뉴를 경험하고 다른 말을 할지 또 모를 일이다. 오늘도 사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볼까 말까 하는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결국 배가 고파지기도 했고 궁금증을 참지 못해서 빵과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디카페인 블렌드의 이름은 “속삭임과 침묵”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카페의 커피 철학은 나와 결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과테말라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노도 물맛이 앞선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향이 거의 없고, 물맛이 나는데도 신맛 없이 쓰기만 하다. 아라비카보다는 로부스타의 향미에 가깝게 느껴졌다. 블렌드에 로부스타가 섞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로부스타의 느낌을 메인으로 두는 블렌드는 내겐 많이 낯설다. 그런데 실상을 확인하지도 않고 너무 멀리 짐작하는 건 그만두자. 그냥 나랑은 취향이 맞지 않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