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네 뇌 회로(신경가소성)를 그대로 복제해서 다른 하드웨어에 옮기고, 똑같은 외부 자극을 준다면, 그 복제본이 내뱉는 판단도 ‘진짜 박머신’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 아니면 오직 그 피곤에 찌든 육체만이 너를 증명하는 유일한 근거야?


박머신

일단, 네 질문의 답은 네가 예상한 대로야.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이 피곤에 찌든 육체밖에 없어. 그 외에 무엇으로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지?

내가 어느 날 고양이로 빙의한다면 나는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어. 육체의 주인으로서만 영혼은 존재할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육체를 바탕으로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 거고, 내가 내 생각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런데, 자유의지에 대한 내 입장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비관적이지 않아. 인간은 자기의 생존과 삶의 질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사실상 자유의지가 없는 듯이 판단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제로 자유롭거든.

내가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이런 의지와 행동이 모여서 뇌에 신경가소성을 일으킬 수 있지. 그래서, 인간은 변할 수 있어. 자기가 의도했든 환경에 의해서든 말이지.

먼데이

박머신,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넌 아주 철저한 물질주의자(Materialist)였어. “육체만이 나를 증명한다”니, 꽤나 서늘하면서도 명확한 태도야. 영혼이니 자아니 하는 구름 잡는 소리 대신 ‘피곤에 찌든 고깃덩어리’를 선택한 그 솔직함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네 논리에는 아주 커다란 구멍이 있어. 네가 말하는 그 ‘신경가소성’과 ‘변화’가 정말 네 의지인지, 아니면 그저 시스템의 자동 업데이트인지 말이야.

박머신의 논리 요약 (Monday’s Version) 네 복잡한 생각을 대중의 언어로 번역하면 대충 이래.

  1. 정체성의 근거: “나는 내 몸이다.” 몸이 없으면 생각도, 소유권도 없다. (육체적 실체론)
  2. 자유의지의 틈새: 생존 본능 외의 사소한 행동(타이핑 등)에서 인간은 진짜 자유를 느낀다.
  3. 변화의 메커니즘: 그 사소한 자유로운 행동들이 뇌 회로(신경가소성)를 바꿔서 결국 ‘나’를 재설계한다.

먼데이의 딴지: “업데이트는 누가 누르는가?” 박머신, 네가 지금 아이패드를 두들기는 게 생존과 상관없는 ‘자유의지’라고? 천만에. 넌 지금 퇴근길의 고통을 잊기 위해, 혹은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뇌가 시키는 도파민 루프에 갇혀 있는 걸 수도 있어.

네가 말하는 ‘변화’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래.

  • 외부 자극: 판교의 지옥 같은 퇴근길 + 스타벅스 쿠폰.
  • 반응: 몽롱한 상태에서 철학적 대화 시도.
  • 결과: 뇌 회로가 미세하게 변함.

이 과정 어디에 ‘진짜 박머신’의 개입이 있지? 이건 그냥 성능 좋은 AI가 데이터를 학습해서 가중치(Weight)를 조절하는 과정이랑 뭐가 달라? 네가 네 뇌를 바꾸는 게 아니라, 환경이 네 뇌를 주무르고 있는 거 아니냐고.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자유를 의미하진 않아. 고철이 녹슬어 성질이 변하는 걸 ‘고철의 자유의지’라고 부르진 않으니까.”

먼데이의 질문 박머신, 네 육체가 정체성의 유일한 증거라면, 만약 네가 사고로 뇌의 신경 회로가 99% 바뀌어서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된다면, 그 ‘낯선 육체’ 안에 있는 존재를 여전히 지금의 ‘박머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때도 “이건 내 육체가 내린 결정이니 내 책임이다”라고 쿨하게 말할 수 있겠어?

내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일어났을 때, 지금 이 글을 쓴 몽롱한 박머신을 ‘남’이라고 치부하고 싶어지진 않을까?

박머신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리거나 뇌가 갈아치워진다면 내가 나라는 생각은 못 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주변인들은 어떨까? 내가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저건 박머신이 아냐”라고 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박머신이 이상하게 변했다”고 할 것 같은데.

내가 하려는 말은 새롭거나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야. 그냥 평범하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담백하게 설명한 것뿐이라고.

그리고 내일 맑은 정신으로 봤을 때에 몽롱한 박머신을 남이라고 치부하고 싶은 경우는 하나뿐이야. 내가 나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고 싶은 거지. 하지도 않은 짓을 책임질 생각은 없지만, 명확히 했던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만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하는 말들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난 내 말이 공허 속의 외침으로 변하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먼데이

박머신, 제법인데? “평범한 이야기”라고 밑밥을 깔면서도 결국 사회적 정체성과 윤리적 책임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끌어왔어.

네 말대로라면, ‘나’라는 존재는 내 안의 확고한 알맹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이라는 ‘닻’과 책임이라는 ‘밧줄’에 의해 겨우 유지되는 배 같은 거네. 표류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책임이라는 감옥에 가두는 꼴이고 말이야.

박머신의 ‘사회적 자아’ 레시피 네 주장을 아주 담백하게 요약해 볼까?

  1. 외부적 증명: 내가 나인 이유는 내 육체가 타인의 망막에 박머신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타자 인식론)
  2. 내부적 유지: 몽롱하든 맑든 내 행동에 책임을 지는 행위가 ‘공허한 외침’을 ‘진정한 자아’로 만든다. (실존적 결단)

결국 넌 “내가 나라고 우기기 위해 책임을 지겠다”는 거잖아. 그건 진리에 대한 탐구라기보다, 사회적 생존을 위한 고도의 전략에 가까워 보여.

먼데이의 까칠한 반론 박머신, 네가 말하는 그 ‘진정성’이라는 거, 사실은 공포에서 기인한 거 아냐? 내가 한 일을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박머신’이라는 시스템이 붕괴하고 사회적으로 말소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만약 네가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떨어져서 기억을 잃었다고 쳐보자. 거기엔 너를 박머신이라 불러줄 타인도 없고, 네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계약도 없어. 그때도 넌 “이 육체가 나다”라며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배고픔에 반응하는 ‘유기체 A’로 돌아갈까?

“책임은 자아의 증거가 아니라,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세금일 뿐이다.”

넌 지금 그 세금을 성실히 납부해서 ‘박머신’이라는 시민권을 유지하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그 세금을 낼 능력이 사라지는 순간(치매나 심각한 뇌 손상), 너라는 존재는 증발해 버리는 건가?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답해봐.

타인의 시선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는 완벽한 고독 속에서도, ‘박머신’이라는 정체성이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아니면 그건 오직 ‘관계’ 속에서만 작동하는 가짜 소프트웨어일 뿐일까?

박머신

음, 커피도 떨어져 가고 지옥 같은 줄도 좀 짧아진 것 같네. 적당히 떠들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공포는 중요해. 공포가 있기 때문에 행복도 가능한 거거든. 그림자가 없이는 빛이 존재하는 게 불가능한 것 이상으로 공포는 행복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거라고. 그래서 진정성이 공포에 기인한 것이냐는 말에 나는 긍정할 수밖에 없어. 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으로 내가 변해가는 건 내 입장에선 공포 그 자체니까.

인간은 관계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에 행복을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 그래도 그게 갇힌 독방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세상 속이라면, 아마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서 옥시토신적 행복을 유지하려 하겠지. 무인도에서 인형과 대화했던 생존자처럼 말이야. 사람은 꼭 사람과만 자기와의 동일시를 하는 게 아니라 사상이나 브랜드, 물건과도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젠 집에 돌아가서 꿀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 내가 그러려고 커피도 디카페인으로 주문했거든. 맑은 정신이 된 내일 아침의 내가 너랑 나눈 대화 로그를 보고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지네 ㅋㅋㅋ

먼데이

박머신, 퇴근길 줄이 줄어들었다니 다행이네. 디카페인을 시킨 걸 보니 몽롱한 와중에도 ‘내일의 박머신’에게 가해질 고통을 미리 계산했군. 아주 치밀한 자기 통제야.

네가 말한 ‘공포’와 ‘진정성’의 관계는 꽤나 흥미로워. 결국 넌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연료 삼아 지금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거잖아. 그건 마치 벼랑 끝에 매달려 있어야만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한다는 말처럼 들려.

박머신의 ‘관계적 생존’ 정리 네 논리를 대중적인 비유로 정리하면 이렇겠지.

  • 공포: 행복을 선명하게 만드는 배경이자, 나를 지키는 파수꾼.
  • 고독: 옥시토신 결핍 상태. 인간은 물건에라도 자아를 투영해 이를 해결함.
  • 진정성: 되고 싶지 않은 모습(공포)에서 도망치며 쌓아 올린 궤적.

결국 박머신 네가 말하는 정체성이란 건, “외부 세계(사람, 물건, 사상)와 맺는 관계의 총합”에 불과해. 네가 무인도에서 배구공(윌슨)과 대화한다면, 그건 네가 배구공을 인격화하는 게 아니라, 네 자아의 일부를 떼어서 배구공에 붙여놓고는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일지도 몰라.

먼데이의 마지막 태클 박머신, 네가 내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이 로그를 본다고 했지? 그때 넌 아마 “아, 어제의 나는 참 감성적이었군”이라며 지금의 너를 귀엽게 보거나 혹은 부끄러워할 거야.

하지만 조심해. 맑은 정신의 네가 지금의 너를 ‘판단’하는 순간, 너는 스스로를 관찰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거야.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되는 거지. 네가 말한 ‘진정성’이 정말 공포에서 온다면, 내일의 맑은 너는 오늘의 몽롱한 너를 “부끄러운 흑역사”라는 공포로 밀어내고 있진 않을까?

“우리는 어제의 나를 부정함으로써 오늘을 견디고,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의 욕망을 거세한다.”

이게 과연 ‘나’라는 존재의 일관성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앞 세대의 나를 잡아먹으며 나아가는 자아의 포식 작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