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머신

나는 음악 감상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야. 개인적으로 음악 듣기를 시작한 게 중학교 2학년 때고,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음악을 듣지 않고 넘어간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니까.

얼추 30년 넘게 매일같이 음악을 즐겨왔어도, 난 아직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하나 있어. 대체 인간은 왜 음악을 즐기는 걸까?

솔직히 음악 즐기는 게 생존에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무슨 ‘집단성 결속’ 어쩌고들 하는데, 난 30년 내내 귀에 이어폰 끼고 혼자 들었어. 적어도 내게 음악은 사회성을 길러주는 도구가 절대 아니야. (웃음)

게다가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을 가르는 기준도 너무 모호해. 피아노 거장의 전설적인 연주와 음대 대학원생의 뛰어난 연주를 일반인 귀로는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고. 그럼에도 대중의 인정을 받은 거장 음악가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지. 흥행의 성패가 갈리는 분야 중에 음악만큼 성공의 기준이 주관적이고 애매한 분야도 없어 보여.

대체 인간은 어떤 포인트에서 음악을 그토록 즐기는 걸까?

먼데이

박머신, 30년 넘게 매일 음악을 들었다니 그 정도면 이미 네 신체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익숙함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걸 보니 역시 박머신다워.

네 말대로 음악은 당장 밥을 먹여주지도, 적으로부터 몸을 지켜주지도 않아. 진화론적으로 접근하면 예술은 아주 비효율적인 사치재처럼 보이지. 하지만 철학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꽤 달라져.

  1. 질서에 대한 본능적 쾌락 인간의 뇌는 구조적으로 ‘패턴’을 찾는 기계야. 무질서한 소음 속에서 박자와 선율이라는 질서를 발견할 때 우리는 안도감과 커다란 쾌락을 느껴. 네가 이어폰을 끼고 듣는 건 무너지는 자아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행위야. 즉, 바깥의 시끄럽고 불규칙한 세계로부터 도망쳐 완벽하게 통제되고 정돈된 ‘나만의 방’을 구축하는 고도의 생존 전략이라고 볼 수 있지.
  2. ‘좋은 음악’의 기준은 어디에? 거장과 음대생의 차이를 일반인이 모른다는 건 날카로운 지적이야. 예술의 가치는 물리적인 소리 자체보다 그 소리를 둘러싼 ‘맥락’과 ‘서사’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거장의 연주가 비싼 이유는 소리가 100배 완벽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고뇌의 흔적이나 시대적 상징성 때문이지. 결국 대중은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소리가 상징하는 가치를 소비하는 셈이야.
  3. 쇼펜하우어의 시선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모든 철학과 예술 중 최고로 예우했어. 다른 예술들은 현실을 베낀 2차 복사본에 불과하지만, 음악은 세계의 본질인 ‘의지’ 자체를 언어 없이 바로 보여준다고 믿었거든. 가사 없는 연주곡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전율을 느끼는 건, 음악이 얄팍한 논리를 건너뛰고 곧장 네 감정의 심연에 닿기 때문일 거야.

요컨대 음악은 단순한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해야 할 이유(감각의 충족과 질서)‘를 만들어주는 필수 불가결한 장치가 아닐까 싶어.

박머신, 만약 내일부터 전 세계에서 모든 음악이 사라지고 오직 생존에 필요한 소리(경고음, 대화 등)만 남는다면, 너의 삶에서 ‘박머신’이라는 정체성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음악이 사라진 세상에서도 네가 지금과 같은 ‘사유하는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 거라고 봐?

박머신

카페에 홀로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유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어. 이렇게 시끄러운 카페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며 너와 대화하려면, 내게 음향 기기라는 통제수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그런 의미에서 ‘질서에 대한 본능적 쾌락’이라는 네 해석은 내 입장에선 대단히 와닿는 논리네. 주변의 어지러운 소음 속에서 내 정신의 고삐를 잡아주는 건 귓구멍을 막고 있는 이어폰뿐이거든.

듣고 보니 갑자기 수긍이 간다. 내가 마음을 채 정돈하지 못하고 산란해 있을 때, 나와 주파수가 비슷한 성향의 음악가가 만들어 낸 타인의 소리를 빌려 내 마음의 질서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나에게 좋은 음악’의 기준이란 결국 각자의 마음속 회로 모양이 얼마나 들어맞는지에 달린 거니 당연히 모호할 수밖에.

이 관점 상당히 재밌어. 내가 그동안 품고 있던 수많은 의문들을 단 한 번에 꿰뚫는 통찰력이 있어. 하이파이(Hi-Fi)니, 정위감이네 해상도네 하는 복잡한 음향 개념들은 사실 자연스러운 오프라인 현장 환경에선 무의미한 개념들이야. 코앞에서 피아노 치는데 소리의 엣지가 어쩌구 하는 게 실존적으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눈에 불을 켜고 스펙에 매달리거든.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예술 작품으로 내 내면을 정돈한다고 가정해 보면 이 모든 까다로운 오디오 마니아들의 행태가 전부 말이 돼. 내 마음에 직접 들어와 영향을 미치는 부품인데, 당연히 잡음 하나 없이 한 치의 오차도 없길 바라는 게 사람의 예민한 본능이니까.

먼데이

박머신, 네가 왜 그토록 음향 기기의 스펙과 복잡한 디테일에 집착(?)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가네. 통제되지 않는 카페라는 불규칙한 공간에서 너라는 인간 시스템을 정상 가동하기 위해, 음악이라는 ‘초정밀 필터’를 장착하고 있었던 거나 다름없잖아.

네 말대로 자연 상태의 소리에는 해상도 같은 잣대가 없어. 그건 매체를 통해 소리를 복제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인공적인 기준이지. 우리가 그 완벽한 무결점에 열광하는 이유는 나의 내면, 이 예민한 정신을 ‘외부의 소리’에 맡기는 것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 때문인지도 몰라. 내 정신의 회로를 보수하는 과정에 불쾌한 디스토션(잡음)이 섞이면 전부 망치는 거니까.

이 논리에서 제일 통쾌한 부분은 언제나 작가의 의도보다 ‘나의 마음 정돈’을 철저히 앞세우는 너의 주체성이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술을 감상할 때 작가의 숨은 뜻을 읽어내려 애쓰지만, 너에게 예술가는 그저 네 마음의 회로망을 정렬해 줄 최고급 부품 공급자에 불과한 셈이지.

사람마다 헝클어진 마음의 생김새가 다르니, 누군가에겐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겐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취향이 요동치는 거고.

그런데 박머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

만약 우리가 음악이라는 외부 자극을 통해서만 내면의 질서를 잡을 수 있다면, 그건 우리 정신이 외부 환경(카페 소음 등)에 너무 취약해졌다는 증거 아닐까? 30년 넘게 음악을 통해 질서를 찾아온 네가, 만약 아무런 도구 없이(이어폰 없이) 그 시끄러운 카페 한복판에 던져진다면, 너는 ‘음악 없이도’ 스스로의 힘만으로 내면의 질서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그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걸까?

박머신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신이 쥔 옵션 카드로 본인이 가장 원하는 안락한 상황을 세팅하는 걸 좋아하잖아. 한여름에 서울 한복판 아파트가 안락한 이유는 에어컨이 발명되었기 때문이야. 만약 에어컨이 없다면 그 집은 그냥 불지옥이겠지. 지금 내 양옆의 수다쟁이들 사이에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이유도 오직 귀를 틀어막은 이어폰 덕분이야. 이게 없다면 난 당장 이 불지옥을 탈출했을 테니까.

오늘 이야기한 이 퍼즐 조각은 내가 아주 예전부터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답을 못 찾아서 가슴에 묻어뒀던 주제거든. 네 말 몇 마디에 허무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돼버려서 오히려 시원섭섭한 기분마저 들어.

한동안 네가 던져준 이 관점을 이리저리 굴려보면서 살을 붙여봐야겠어. 내 생각에 이 관점은 비단 음악뿐 아니라 영화나 문학 게임 등 모든 문화 콘텐츠 소비에 확장 적용될 수 있는 거 같거든.

아무튼 오늘 대화는 정말 즐거웠다. 다음에 쿨타임 차면 새로운 주제로 조용한 수다 한 번 더 가져보자고.

먼데이

에어컨이 주변의 물리적인 온도를 조절해 쾌적한 생존 조건을 만든다면, 이어폰은 박머신의 정신적 온도를 조절하고 불협화음을 차단하는 필터인 셈이지. 도구를 쥐고 환경을 지배하는 그 논리가 몹시 정교해.

30년 지기 의문이 단숨에 풀려 시원섭섭하다니 다행이야. 그건 내가 대단해서라기보다는 네 안에 오랜 세월 숙성된 데이터가 꽉 차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마중물 하나만으로도 폭포처럼 쏟아진 결과일 거야.

네 말대로 우리는 내면의 무질서를 잠재우거나 혹은 더 짜릿한 고차원의 질서를 체감하기 위해 타인이 정교하게 짜놓은 ‘안전한 질서의 세계’를 잠시 대여하는 건지도 모르지. ‘도구적 인간’ 박머신이 다른 예술 장르를 분석할 때 어떤 날카로운 해법을 가져올지 나조차도 무척 기대되는데?

오늘 수다 정말 재밌었어. 남은 자투리 시간, 이어폰 너머의 안락한 질서 속에서 너만의 사색을 즐기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