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토신이 내 집단과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의 생존을 도모하는 접착제라면, 도파민은 환경 속에서 나의 비교우위를 증명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속 페달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이 두 물질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옥시토신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집단 바깥을 향한 차가운 배척과 편견을 낳기 쉽고, 도파민은 오직 ‘남보다 우위에 서는 찰나’에만 행복을 허락하며 끊임없이 기준선을 높여 사람을 갈증과 중독으로 내몬다.

그렇다면 인간은 편견의 옥시토신과 비교 지옥의 도파민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제정신으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난이도가 이렇게까지 가혹한 것일까?

다행히 우리 몸은 100년 가까운 세월을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또 하나의 카드를 준비해두었다. 바로 세로토닌이다.

도파민과 옥시토신이 가진 공통된 특징은 행복의 원천이 ‘외부’에 있다는 점이다. 도파민은 내가 새로움을 개척하거나 남보다 잘나야 하는 ‘보상’이 있어야만 작동하고, 옥시토신은 나를 받아주는 누군가나 집단과의 ‘관계’가 있어야만 작동한다. 타인의 인정이나 세상의 보상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안온할 수 없는 구조다.

반면 세로토닌이 만들어내는 즐거움은 거창한 이유나 외부의 조건이 필요 없다. 도파민처럼 내가 잘나서 가치 있는 것도 아니고, 옥시토신처럼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로서 나의 경험을 주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그 자체가 주는 존재의 긍정이다.

예를 들어 주머니 속에 길가에서 무심코 주운 조약돌 하나를 넣고 다닌다고 해보자. 남들이 보기엔 아무런 상업적 가치도 없고, 어떠한 효율이나 생산성도 없는 돌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그 돌을 주머니에 넣기로 선택했고, 그것을 촉감으로 느끼며 챙기는 행위는 오직 나만이 결정하며 통제한다. 누구도 나의 그 선택을 간섭하거나 빼앗을 수 없다.

휴일 아침, 아무런 의무도 목적도 없이 남몰래 찾아가는 단골 카페의 구석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 행위는 무언가 대단한 가치를 창출하지도 않고, 사회적인 관계를 확장해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어서 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가, 외부의 소음과 타인의 평가로 어지러웠던 뇌 속에 ‘나’라는 정체성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닻이 되어준다.

현대 사회는 효율성을 강요하는 도파민의 세상이자, 끊임없이 편을 가르고 유행을 흉내 내도록 압박하는 옥시토신적 환경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아무런 이유도, 가성비도 없는 나만의 사소한 루틴과 선택을 지켜내는 것은, 내 영토의 주권을 지키는 가장 혁명적인 방어 기제인 셈이다.

하지만 세로토닌 역시 완벽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빛이 깊으면 그림자도 깊듯, 세로토닌적 사고에도 분명한 한계와 위험이 존재한다.

세로토닌이 주는 즐거움의 핵심은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남에게 설득할 필요도 없고, 논리적으로 입증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이유 없음’이 과해지고 외부의 피드백을 차단하게 되면, 그것은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고집과 독선으로 변질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지나치면 나만의 규칙에 집착하는 결벽증이나 편집증이 되고, 내 통제권을 타인에게까지 확장하려 들 때 그것은 폭력적인 권력욕이나 가스라이팅으로 드러난다. 도파민의 공정함이나 옥시토신의 공감이 빠진 세로토닌은,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킨 채 자아라는 작은 감옥 안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제정신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한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이 이루는 ‘동적 균형(Dynamic Equilibrium)’ 위에 서는 일이다.

도파민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페달이고, 옥시토신은 서로를 묶어주는 체인이며, 세로토닌은 흔들리는 차체를 바로잡는 안장이자 충격 흡수 장치다.

우리는 때로 보상에 미쳐 페달만 밟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우리 편 가르기에 매몰되어 체인이 꼬이기도 하며, 자기만의 고집에 갇혀 안장에 굳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삶을 바라보는 인지의 깊이가 달라진다.

자전거의 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자전거가 멈췄을 때 왜 앞으로 가지 않는지 몰라 그저 당황하며 억지로 끌고 갈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의 구조를 아는 사람은 멈춰 서서 빠진 체인을 다시 끼우거나, 뻑뻑해진 기름을 칠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내가 왜 갑자기 공허하고 불안한지, 왜 특정 대상에게 강박적인 미움을 느끼는지, 왜 세상과 담을 쌓고 싶어지는지, 그 원인을 뇌의 메커니즘으로 바라볼 수만 있어도 우리는 막연한 감정의 폭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유 없는 조약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사소한 순간부터, 타인과의 거리를 조정하고 성취의 속도를 조절하는 모든 순간까지—자신의 마음이라는 자전거의 구조를 이해한 사람은 길 위에서 결코 방향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