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까지 우리는 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신경가소성이 촉진되는 조건에 대해 알아봤다. 이제부터는 사람을 회로 안에 가두려 하는 메인 빌런인 편도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도체는 우리가 회로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 단일 기관으로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위기대응을 위한 최강의 핫라인, 편도체
양쪽 관자놀이 조금 위에서 머리 속 중심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근처에 아몬드같은 모양의 작은 구조물이 쌍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로 편도체다. 머리 안에서도 무척 깊은 중심지에서 보호받고 있는 기관이다. 이 작지만 놀라운 기관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이런 위치에 있는 것도 납득이 갈 것이다.
편도체의 핵심 역할은 몸의 모든 위기상황을 빠르게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항상 모든 감각신호를 감시하고 있다가 위기라고 판단하면 0.05초 이내에 활성화 되어서 자신의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몸 전체가 통제되도록 만든다. 목숨이 걸린 순간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거나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등의 현상은 편도체의 통제 덕분이고, 대부분의 척추동물이 비슷한 방식으로 위기 관리를 할 정도로 생존효율을 높여주는 효과적인 기관이다.
편도체의 위기 대응 방식
편도체가 일단 활성화 되고 나면 뇌의 다른 기관이 어떤 신호를 내보내든 전부 무시하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대뇌피질 영역은 일단 편도체가 위기로 판단하고 나면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
편도체의 문제 해결 방식은 다양한 층위로 나뉘어서 병렬적으로 이뤄진다. 이것들이 모두 종합된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서는 간단한 설명을 위해 3가지 층위로 나눠서 설명하겠다.
1층위는 본능적인 대응이다. 인간이 동물로서 가지는 가장 원초적인 위기 회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투쟁, 도피, 동결 중에 뭐가 유효한지 한꺼번에 판단해서 행동한다. 싸워서 이길 수 있거나 허풍이 가능하다면 투쟁하고, 도망이 유효하면 도망가고, 숨을 수 있어 보이면 그 자리에 굳는 것이다.
본능적 대응의 강점은 빠르고 확실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득 찬 지하철에서 자리를 확보하려 한다면 사람들을 겁주는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것만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없다. 칼을 든 범죄자에게서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 빠르게 도망가는 것만큼 효과적일 수 없다. 이런 힘의 논리는 동물의 세계에서부터 국제정세에까지 통할 정도로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힘의 논리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문명화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런 본능적인 편도체의 대응이 불편한 경우도 많다. 지하철에서 진짜로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경찰이 출동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이 운전 중에만 투쟁심이 높아진다던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고만 하면 생각이 굳어버리는 경우도 원인이 같다. 청중한테 공격하거나 도망갈 수 없으니 편도체는 동결을 선택해버린 것이다.
2층위는 학습적 대응이다. 현재의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 내가 과거에 학습했거나 가지고 있던 버릇, 강하게 생각해 왔던 상상들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신경계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거울처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훈련을 하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훈련한다면 위기 상황에서도 몸이 반응해서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군사훈련이나 운전연수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다만, 학습적 대응에만 의존해온 사람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크게 당황할 수도 있다. 이런 대응은 몸의 모든 반응을 한꺼번에 재생하는 것에 가까워서, 그냥 말로 거짓말만 하면 되는 상황이더라도 그 때에만 하는 특이한 제스쳐나 식은땀이 나는 등의 버릇이 나와서 간파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3층위는 창발적 대응이다. 위기가 왔을 때, 적정 수준의 편도체 자극은 전전두엽을 강하게 활성화하도록 만들어서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해결책을 빠르게 조합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텐트에 예상치 못하게 곰이 들어왔을 때 짐에서 향수를 꺼내서 뿌리고 도망치는 것처럼 순간적인 아이디어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대응방식이다. 예술가들이 농담 삼아 “배고파야 예술이 잘 된다”고 하는 말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이런 대응방식에 의존하는 사람은 위험 감수 성향이 높아지고, 상황에 따라 엉뚱하거나 비현실적인 선택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위의 3개 층위는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서 임의로 정돈한 것이고, 실제로는 더 복잡한 층위의 생각이 병렬적으로 한꺼번에 이뤄지고 통합된 결과가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 어느 방식이 주도적인 행동원리가 되는지는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경험에 의해 신경가소성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성향에 따라서 기본적인 선호도가 결정된다.
결국 편도체는 위기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다양한 측면의 솔루션을 준비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도록 만드는 고성능 기관이다.
편도체가 메인 빌런이 된 이유
그런데 이런 중요 기관을 왜 메인 빌런 취급하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편도체가 활성화된 상황은 긴급상황이기 때문에 편도체의 판단은 빨라야만 한다. 그래서 판단에 쓰이는 연결망은 회선굵기가 가장 굵은 회로에서부터 얇은 회로의 순서대로 검색하며, 검증과정 없이 즉시 회로에 만들어진 그대로 몸이 반응한다.
- 여기에서 평소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속마음이 행동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 인간의 불합리가 가장 극적으로 나오는 구간
- 이 회선 우선순위 구조는 진화적 생존 전략의 산물이다. 판단이 늦으면 죽는 상황에서 뇌는 ‘검증보다 속도’를 택했다. 그 결과, 평소 반복된 인식이 우선 호출되는 구조가 되었고, 이로 인해 편견이나 습관적 사고가 위기상황에서 그대로 튀어나오게 된다.
긴급상황에서는 소통보다 신속한 행동이 중요하다. 투쟁-도피-동결의 본능적 해결이나 학습적 해결, 창발적 해결 모두 자기 회로 안에서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이고 외부의견에 대한 수렴절차가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신경가소성이 발동해서 ‘외부 의견을 듣는 것보다 내가 혼자 해결하는게 좋다’는 사고방식이 자리잡게 되고, 이것은 수동적인 회로 인간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고속도로를 타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점이다.
편도체의 활성화 방식
편도체를 활성화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위험 자극의 강도 : 당장 칼에 찔리면 활성화 맥락적 학습 : 이거 다음엔 이거더라 / 전조증상 / 장미향, 감각의 비관적 선별 예측 불가능성 : 지속적인 활성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
편도체는 on/off로 활성화되지 않고, 기저 활성도의 개념이 있다. 감각이 발생하면 편도체로 가는 빠른 회선과 대뇌피질로 가는 느린 회선 양쪽으로 신호가 전달된다. 그 신호를 받으면 편도체는 위기인지 판단하고, 대뇌피질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편도체 활성도가 높아지면 대뇌피질의 영향력이 떨어지게 된다. 편도체의 기저 활성도가 높은 상태라면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대뇌피질의 영향력이 묻히게 된다.
기저활성도가 결정되는 방식도 결국 신경가소성이다. 평소에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생활을 하면 높아지고, 불안함이 낮은 생활을 하면 조금씩 떨어진다. 위기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면 편도체 활성으로 인해 행동을 예측하기 쉬운 상태가 되고, 예측당하고 나면 더 큰 위기로 몰리기 쉽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